GOD BLESS YOU 박영희 개인전
2024.10.01~10.07 관람시간 12:00-19:00 마포구 와우산로17길 19-21 3관
Park Young-hee 나 는 비 오 는 날 을 그 린 다 나는 비 오는 날을 그린다. 빗물에 흥건하게 반짝이는 거리, 양옆으로 나무들이 드리운 숲길에 우산을 쓰고 장대같이 내리는 빗속을 걸어가는 이들. 이 형상들은 실을 붙이고 물감을 두껍게 얹어 만들어진다. 이렇게 흐름과 무게감을 지닌 질감은 캔버스 위에서 나뭇가지가 뻗어나가는 힘, 울퉁불퉁한 표면, 그리고 비의 궤적이 된다. 이런 기법은 독일 출신의 작가인 안젤름 키퍼의 작품과 비슷하다. 그는 물감을 두텁게 칠해서 재료의 층을 만들어내는 임파스토 기법으로 시간의 퇴적을 보여주기도 하고, 흙이나 밀 다발 등 자연에서 온 재료들을 그대로 붙여 작업한다. 전쟁의 비애와 폐허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지만 그는 고통과 상실보다는 희망과 재탄생의 순환에 집중한다. 나 역시 순탄치 않았던 고통과 결핍의 지난 시간들의 중첩을, 내 삶의 이야기들을 실과 색을 엮음으로써 풀어낸다. 실은 나의 작업에서 중요한 상징으로, 삶의 얽힘과 해프닝을 나타낸다. 실이라는 재료는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함축하고 있지 않은가? 때로는 묶이고 때로는 풀리며, 때로는 엮이기도 하는 삶의 모습은 섬세하고도 질긴 실의 성질과 무척이나 닮아 있다. 어떠한 인연은 때로는 엉키고 엉켜서 도저히 풀 수 없게 되고, 결국은 잘라내야만 한다. 어릴 적 말이 없고 침묵에 가득한 내성적인 성격으로 자라며 내 안에서 조용히 흘러간 아이 시절, 내 존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내게 단 하나의 안식처로 여겨졌던 그림의 세계가 있었다. 그곳에서만 나는 나를 정말로 표현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림에 대한 꿈이 생겼다. 삶은 항상 바쁘게 흘러가고 붓을 내려놓고 살았지만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면서 항상 내 그림을 그리는 욕망이 있었다. 내 마음 한구석에서 언제나 이야기를 꾀하고 있었다. 수많은 말보다 한 줄기의 선, 한 가닥의 색이 마음을 울리고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걸 보았다. 그림은 나에게 위로가 되고 부정적인 마음을 긍정적으로 바꿔주며 안정과 여유를 선사한다. 사람들은 그렇게 풍요로워진다. 이렇게 그림의 힘이 살아 있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 내 그림 속 내리는 비는 우산이 막아준다. 어떤 우산이든, 각자가 간직한 구구절절 사연이 있다. 우산은 비바람을 막아주고 누군가를 위해 온몸 바쳐 지켜주는 고마운 존재지만 궂은 날만 나와서 자신의 전부를 다해 주인을 지키고 맑은 날엔 어디에 있는지도 까맣게 잊힌 채 어두운 한구석에서 잠자코 있을 테다. 지난날의 나는 모진 비바람이 친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궂은 비가 아니었다. 어쩌면 무지갯빛 빗줄기가 내렸던 것이 아닐까.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이런 당연하고도 어려운 깨달음을 붓질과 실낱 사이에 담아 전한다. 비바람을 만났을 때 여지없이 다시 찾지만 늘 한결같은 그 모습 그대로 나의 비바람을 막아주시는 그분의 사랑도 이러하리라. 나 역시 삶의 한자리에서 누군가의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는 존재로, 때로는 어딘가 한곳에서 든든히 자리하고 있는 우산과 같은 존재로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이 바람이 간절히 흘러 누군가에게 닿기를. 2024. 박영희
박영희 개인전
[전경사진 - 3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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